저자 이정선

왜군들이 바다 멀리서 부산으로 다가올 때 부산진 첨절제사 정발은 마침 영도를 순찰하고 있었다. 그는 안개가 끼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무언가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처음에는 쓰시마섬에서 오는 무역선인줄 알았다.

그러기엔 규모가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 그는 곧장 부산진성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아침 해안으로 상륙한 왜군 선봉 주력부대는 부산진 성을 포위하고 공격준비를 서둘렀다.

이들은 길을 빌려 달라며 부산진성의 항복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발 장군은 이런 요구를 단번에 묵살했다. 이제 싸움은 피할 수 없었다. 고니시군은 성의 3면을 포위하고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다. 그야말로 왜군들이 개미떼처럼 몰려왔다.

왜군들이 머리에 쓰고 있는 삿갓 모양의 전투모가 낮설게 보였다.

부산진성의 군사와 백성들이 이들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정발 휘하의 무관이 정발에게 성 밖으로 피하여 지원군을 기다리자고 했으나 그는 ‘나는 마땅히 마지막까지 이 성을 지킬 것이다. 대장부는 적을 앞에 두고 싸울 뿐’이라며 장졸들을 독려했다.

그러나 그는 전투중 안타깝게도 머리에 총탄을 맞고 순직했다. 지휘관을 잃은 조선 군민은 필사적으로 싸웠으나 두시간여 만에 성은 함락됐다. 700여명의 조선군으로는 중과부적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그 싸움에서 희생되고 일부는 포로로 잡혔다. 정발을 지원하기 위하여 달려온 다대포 첨사 윤홍신도 왜적들과 백병전을 전개하며 싸우다 전사했다.

그날 해가 지기 전에 부산진성은 일본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고니시군은 여세를 몰아 15일 아침 동래성으로 진격해 성을 포위했다. 동래성은 부사 송상현이 지키고 있었다.

그는 왜군의 침략에 대비해 동래성 주변에 나무를 많이 심어 성 외부에서 내부 관측을 쉽게 할수 없도록 해 두었다.

또한 성벽 근처에는 적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끝이 송곳처럼 뾰족한 서너개의 발을 가진 쇠못을 깔고 성 주변에는 연못을 깊게 파 두는 등 방비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래성을 포위한 일본군은 성 남문 밖에서 ‘싸우려면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면 길을 내어 놓아라’라고 쓰인 목패를 세워 항복을 요구했다.

이를 본 송상현은 ‘싸워서 죽기는 쉬우나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글을 쓴 판자를 성 밖으로 내던져 항전 의지를 밝혔다.

송상현이 마침 성안에 머물고 있던 경상 좌병사 이각에게 함께 성을 지키자고 했으나 이각은 주변 산에 진을 치고 일본군을 공격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자신의 부하들을 데리고 성를 빠져 나갔다.

동래부사 순절도에는 도망가는 이각의 부끄러운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후에 적에게 붙잡혀 참수당했다. 송상현은 군사를 이끌고 분전하였으나 결국 중과부적으로 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했다.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갑옷위에 관복을 입고 북쪽의 임금에게 절을 올린 후 성문의 누각에 단정히 앉은 채 왜군에게 피살 되었다. 적장이 그의 충절에 탄복하여 송상현을 살해한 자기 부하를 잡아 죽였다. 왜군 수장 소요시토시 종의지 등이 그의 충렬을 기려 동문 밖에 장사를 지내 주었다.

동래성의 조선군과 백성들은 죽을 힘을 다해 싸웠으나 왜군의 공격을 당해내지 못했다.

거의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사람도 포로가 되거나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일본 종군승 텐케이의 서정일기(西征日記)에는 ‘참수된 조선인이 3,000명이었고 500명이 포로가 됐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음호에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