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덕 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공부를 수동적으로 할 때가 있다. 대개 학창시절의 공부가 그렇다. 그러나 능동적으로 공부를 하고 싶을 때도 있다. 성적과는 관계없이 자아성취를 위해 하는 경우다. 그런가 하면 또 하기는 싫은데 간혹 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공부하고 있는 교재가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거나 그 내용이 자꾸 호기심을 자극할 때다.

내가 처음 중국어를 공부하던 시절 지겹지 않고 재미있게 공부를 하던 교재가 하나 있었다. 돌이켜 보니 중국어 실력을 쌓는데도 도움이 되었지만 인생살이에도 큰 교훈을 준 교재였다고 생각된다. 중국어 어느 원문 중의 내용을 각색하면 이렇다.

어느 면장이 잔치에 친구들을 초대했다. 열 명을 초대했는데 일곱 명이 도착했다. 아직 세 사람이 안온 걸 보고 면장이 “꼭 와야 할 사람들이 안 왔다.”고 중얼거렸다. 이 말을 들은 두 명이 “그럼, 나는 꼭 와야 할 사람이 아니었나?”라고 생각하고 살며시 자리를 떠버렸다. 친구가 떠나가는 걸 보고 면장이 “가서는 안 될 사람이 가버리네.”라고 말했다. 남아 있던 친구들이 “그럼 가야될 사람은 나란 말인가?”라며 다시 세 명이 자리를 떠나버렸다. 휑한 자리를 보면서 면장이 “내가 그 사람들한테 한 말이 아니었는데”라고 했다. 그러자 남아 있던 친구들이 “그럼 나한테 한 말이었나?”라며 결국에는 전부 다 떠나버렸다.

척 봐도 지어낸 유머라는 걸 알 수 있다. 실제로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공부를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유도를 하고 있다. 어찌 다음 문장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뿐만 아니다. 유머 속에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말에 대한 해석의 중요성이다. 화자(話者)의 진심이 비틀려서 해석되면 그 결과는 참으로 난감하게 된다는 교훈이다. 실제 생활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다. 그래서 시사(示唆)하는 바가 예사롭지 않다.

왜곡은 청자(聽者)가 너무 순진한 결과 화자(話者)의 맥락을 잘못 짚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삐딱하게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후자 같은 경우는 누군가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말에 꼬투리를 잡아가면서 화자의 진심을 왜곡하는 대단히 나쁜 짓이다. 세상살이에서 간혹 이런 모습을 경험한다. 정나미가 떨어진다. 그냥 세상 살 맛이 안 난다.

중국말에 ‘언자무의, 청자유심.(言者無意, 聽者有心.)이란 속담이 있다. “말하는 사람은 별 의도가 없는데, 듣는 사람이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란 뜻이다. 말하는 쪽에선 무심코 한 말이었는데 듣는 사람이 본의와는 달리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여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보나마나 상호관계가 원만하지 못할 때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관계가 원만하다면 지나친 쌍욕을 해도 농담으로 해석해 넘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이란 듣는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란 표현도 낯설지가 않다.

말은 우선 곡해의 소지가 없도록 말하는 사람이 신중해야 한다. 그런데 신중하게 말을 했음에도 듣는 사람이 의도적으로 달리 받아들일 땐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러고 보면 말의 의미와 전달은 수사(修辭)의 기술보다는 상호간의 관계나 정서에 답이 있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아니다. 분명, 눈빛만 봐도 속마음을 알 수 있는 그런 관계에선 뒤틀린 해석이 나올 수 없기에 말의 의미는 상호 ‘관계’에 있음이 확실하다.

때로는 말이 아닌 행동과 표정으로 의미를 대신하기도 한다. 이때는 보기에 따라 더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고 왜곡을 하면 또 다른 논리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더 크다. 관계가 우호적인지 적대적인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반응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세상살이!’-‘뭐 별것 있나!’ 언젠가 들은 건배사다. 가만히 생각하면 그냥 술자리에서나 가능한 표현인 듯하다. 서로의 진심이 왜곡되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