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룡(하동군 진교면)

4,000여 년 전 고대 수메르인들의 서사시에 많이 등장하는 '길가메시'에 대한 얘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길가메시라는 영웅과 엔키두라는 아주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둘이서 숲 속에 사는 괴물 훔바바를 죽이는 모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괴물을 죽이긴 했지만, 친구 엔키두도 죽어버렸다.

갑자기 친한 친구의 죽음 앞에서 유일하게 영생(永生)을 얻은 우트나피슈팀에게 영원히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을 한다. 그러나 우트나피슈팀은 거절한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했더니‘별것 없다. 다시 네 고향에 가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친구들과 맛있는 것 먹고, 아름다운 여인하고 사랑을 나눠라’고 하였다.

생명체의 본능은‘생존과 번식’이다. 친구들과 맛있는 것 먹고, 아름다운 여인하고 사랑을 나눈다는 건 생존과 번식의 문제이다. 그런데 이제‘번식’이라는 본능에 문제가 생겼다. 대한민국 출산율은 세계 200위로 꼴찌 수준이다. 옥스퍼드 인구문제연구소는 한국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 했다. 50년 내 3천만 명 수준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우리나라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하여 지난 15년간 280조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국 중 10년째 꼴찌다. 우리 하동은 0.88명으로 전국 평균보다는 높지만 도토리 키재기이다. 인구수를 유지하려면 합계출산율이 2.07은 돼야 하는데 그야말로 비상이다.

우리의 결혼 상황은 출산보다 더 심각하다. 2022년 국내 결혼 건수는 19만1700건으로 10년 새 한국인 결혼 건수는 40% 이상 감소했다. 2022년 전국의 남녀인구 1,000명당 결혼 인구는 8.47명이다. 250개 시군구 중 결혼 인구 1위 지역은 경기도 과천시로 14.25명이며, 가장 적은 250위 지역은 경상북도 군위군으로 2.90명이다. 하동은 4.03명으로 242위다.

하동군의 경우,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시책을 출산장려금이나 영유아 양육수당처럼 주로 출산과 육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제 페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출산에 앞서 결혼이 먼저다.

하동군 홈페이지‘분야별정보’에서‘인구증대시책’에 들어가 보면 32개의 시책 중 출산 및 육아(학자금 지원 포함)에 13개(40.6%)이며 결혼 장려는 결혼식장 무료대여와 결혼장려금 지원의 2개(6.3%)에 불과하다. 육아에 대한 부담 때문에 출산을 꺼리는 국민 정서에 직결되는 것은 맞지만, 별무효과에 가까운 이런 정책은 정부든 군이든 청년들의 혼인 기피 현상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탓이라는 인식도 지우기 어렵다.

2020년 일본 정부는 70년 만의 역대 최저 혼인율을 올리기 위해 AI 중매 사업에 약 206억원을 투입하기로 하였다. 46개 지자체 중 10개 이상이 이 제도를 활용 중이다. 한국은 어떨까? 결혼연령대인 MZ세대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양극화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결혼을 포기했다. 최근 결혼정보업체 설문에 따르면 그들의 72%는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고 대답했으며, 61%가‘결혼은 사치라고 느낀 적이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지자체가 청년 만남 서비스를 추진하고 있지만‘예산 낭비’,‘근시안적 대책’이라는 비판에 부딪혀 제대로 굴러가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가 8,000만원을 들여 올해 진행하려 한‘청년만남 서울팅’은 시의회와 일부 여성 단체의 항의로 중단됐다.

우리 역시 일본처럼 장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점에서 일본 지방 소도시들과 같은 혼인 지원책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저출산을 해결하겠다며 육아 지원에만 매달리는 것이 오히려 근시안적 정책에 가깝다. 당장 눈앞에 닥친 저성장 위기는 저출산에 기인하고 있지만, 청년들의 혼인 감소라는 더 높은 파도가 우리에게 밀려오고 있다.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가수 장재흥 씨가 이정록 시인의‘의자’가 전하는 따뜻한 메시지에 감명받아 허락을 구하고 곡을 붙였단다.‘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청년들이여! 용기를 내어보면 안 될까? 하동군이여! 패러다임을 바꿔보면 어떨까? 결혼은 사치가 아니고 본능이다. 아름다운 여인하고 사랑을 나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