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덕 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2018년 아시안게임 때, 금메달 성적을 받아놓고도 은메달을 받은 선수가 있다. 체조 종목에 출전했던 우리나라 김한솔 선수다. 마지막 착지 후 성적을 확인해 보니 최고 점수로, 차점인 홍콩선수보다 0.062점이 더 높았다. 이에 흥분한 김한솔 선수는 코치와 감독에게 달려가 포옹을 했다. 그런데 잠시 후 순위가 2위로 내려가 버렸다.

코치와 감독이 심판에게 달려가 항의를 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었다. “존경하는 코치님 감독님! 착지 후 마무리로 심판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는 걸 모르신 건 아니죠?” 그랬다. 최고 점수를 받아 너무 기쁜 나머지 김한솔 선수는 심판에게 인사하는 걸 깜박 잊어버렸던 모양이다. 이 때문에 최종 점수에서 페널티로 0.3점이 감점되는 바람에 금메달을 놓쳐버린 것이었다.

국제체조연맹 규정집에는 인사에 대한 규정이 분명하게 명기되어 있었기에, 그 어떤 항의도 통할 수가 없었다. 엄연한 규정 앞에 어쩔 수 없었던 김한솔 선수는 인터뷰에서 “착지 후 자세를 잡고 심판한데 인사를 안 해서 감점이 됐다.”면서, “그것만 아니면 금메달인데, 너무 분하다.”고 눈물을 흘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고개만 잠깐 숙였더라면 금메달이었는데, 그 인사 하나를 놓치는 바람에 메달 색깔이 달라져버린 것이다. 옛말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했다. “인사(人事)를 다 하고 나서, 하늘의 명을 기다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이 ‘인사’가 그 ‘인사’였더란 말인가?

‘인사(人事)’란, 어떤 조직에서 직원을 임용하거나 해임하고 평가할 때 주로 사용되는 행정 용어다. 하지만 사람이 서로 만나거나 헤어질 때 예의를 표하는 것 역시 ‘인사(人事)’라 말한다. 살다보면 알게 된다. 조직의 ‘인사’ 문제도 중요하지만, 일상에서 늘 마주치는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인사’도 더 없이 중요하다는 사실 말이다.

체조경기에서의 인사는 점수화되어 있지만, 우리들의 일상 속 인사는 점수화되어 있진 않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일 때가 많다. 그러나 조직이나 세상살이에서의 그 페널티는 상상을 초월한다. 누군가를 평가할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사람을 대하는 그 사람의 태도와 인사하는 표정이다. 그 인사성과 인상이 많은 것을 결정하게 해준다.

인사는 서로를 존중한다는 소통의 상징이요, 화합과 단결을 위한 출발점이다. 이것이 안 되면 건강하고 발전적인 조직을 만들어 가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실력 좋은 직원이 승진하지 못하는 경우는 있어도, 인사 잘하는 직원이 승진 못하는 경우는 없다고 했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그 정도로 사람간의 인사가 중요하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오래전 같은 아파트의 한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인사 잘 하는 애들 아빠시군요?”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 왔다. 애들 덕분에 부모인 내가 칭찬을 받는구나 싶었다. 그래, 우리 애들이 누군가에게 그렇게 보였다면 세상에 나가서 굶어죽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 가지가지 한다. 자기 자랑에 자식 자랑까지, 참 오지다.” 그렇다. 내가 가진 재산은 오직 이것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말까지 하게 됐다. 용서를 바란다.

세상에선 간혹 “싸가지가 없다.”는 표현을 쓴다. 주로 고개 숙이는 ‘인사’와 연관된 경우가 많다. 인사 하나 제대로 못하는 사람은 금메달로 살아갈 사주팔자임에도 은메달･동메달, 아니 노메달 인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 ‘금메달 인생’도 다름 아닌 ‘인사’에 달렸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