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덕 논설위원(경상국립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갑자기 아버지 허리에 문제가 생겼다. 반듯하게 누울 수도 없고, 허벅지에 힘이 빠져 걸으려고 하면 퍽 주저앉을 것만 같다고 했다. 부랴부랴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아버지 주민증을 받아 내가 대신 접수를 했다.

“생년월일이…, 주소가…, 전화번호가…, 맞나요?” “예, 맞습니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나요?” “허리가 이렇고 저렇고 해서…” “무릎 아래까지 저리세요?” “아니요, 저리지는 않다고 하십니다.” “예? 본인 아니세요?”

그랬다. 직원은 나를 91세인 아버지로 봤던 것이다. 직원의 질문에 잠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그렇지, 66세인 나를 어찌 90세가 넘은 노인네로 볼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 정도의 충격에 격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일찍부터 단련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아내와 함께 치과에 갔더니 간호사가 날더러 아내의 친정아버지냐고 물었다. 그때 난 50대 초반에 불과했다.

진료를 마친 뒤, 아버지를 차에 태워놓고 약국에 약을 타러 갔다. 약사가 약을 건네주며 물었다. “아버님 약인가 보죠?” 안경을 끼지도 않았는데 그 약사님은 상당히 시력이 좋았다. 정확하게 날 봐 주었다. 아니 마음씨도 고왔고, 성격도 차분할 뿐더러 말도 쉽게 불쑥하지 않는 참 ‘훌륭한’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의 ‘91세’ 이야기를 한 지인에게 했다. 지인은 놀라지도 웃지도 않았다. 그럴 수도 있다고까지 말했다. 요즘은 대단히 ‘젊은 노인’들이 많아서 나이를 종잡을 수가 없다고…. 아흔이 넘은 분들 중에도 일흔 살처럼 몸도 건강하고 옷차림도 젊은이들 못잖게 멋진 분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얘기를 듣다보니 초라한 지금 내 모습보다는, 탱글탱글한 몸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만년의 요즘 어르신들이 그려졌다. 나도 그 나이쯤 되면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그래서 요 며칠, 지금까지 해 오던 소극적인 운동 방식을 바꿔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작심삼일이 될지언정….

“종불타불명(鐘不打不鳴)이라 했다.” “종은 치질 않으면 울지 않는다.”란 뜻이다. 결과는 분명 원인이 있다는 말일 것이다. 건강한 몸을 가진 사람들은 분명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단하게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간혹 밤에 바람을 쐬러 강변 산책로에 나가보면 바로 알게 된다. 정작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될 듯한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 물론 진짜 다이어트가 필요하겠다 싶은 분도 간혹 있다. 하지만 그리 많지 않다. 어쩌면 그들은 집 소파에 누워서 다이어트에 좋은 비법만 검색하고 있을지 모른다.

언젠가 “인생은 한 획 차이다.”란 내용으로 캘리그라피 작품을 하나 만든 적이 있다. 작품 여백에 ‘一十千(일십천)’이란 세 글자를 한자로 썼다. ‘한 일(一)’에 한 획을 더하면 ‘열 십(十)’이 되고, 다시 한 획을 추가하면 ‘일천 천(千)’이 된다는 걸 시각화하기 위함이었다. 한 획을 더하는 노력이 대단한 결과로 나타남을 부각시킨 것이다. 이는 그저 언어유희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안엔 부정하지 못할 세상 이치가 담겨있다. 땀은 정직하다는 것이다. 체중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세상은 ‘검색’만 있고 ‘사색’이 없는 세상이다. 실제적인 승리는 드물고 그저 정신승리만으로 위로받는 세상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늘 깨어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시점에서 나를 한 번 돌아본다. 잘해가고 있는가? 당당하진 못하지만 그런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계획적인 운동도 일단 작심삼일은 넘겼다. 이에 자축의 ‘셀프 리액션’ 한 번 날린다. “와우, 와우, 와우!” 장수도 건강이 따라주지 않으면 결코 행복이라 말하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