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가 어느날 갑자기 두찬이 사라져 버렸다. 두찬뿐만 아니라 순옥도 같은 날 사라져 버렸다. 아니, 엄밀하게 같은 날인지 아닌지 단정하기는 어려웠다. 크리스마스 날 새벽 네 시까지 대리운전 일을 하고 집에 들어갔을 때 순옥의 자취가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나갔는지 크리스마스에 나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옷가지며 많지 않은 화장품, 책 몇 권, 미리 사둔 생리대까지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물건이 그 방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이런 경우 흔히들 하는 것 같은 편지나 쪽지조차 없었다.

영우는 그제서야 자신이 ‘그녀는 언젠가 그렇게 사라져버릴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두찬에 대해서는 조금 달랐다. 순옥이 사라진 방에서 그녀의 자취를 찾지 못하고 종일 망연자실해 있던 영우는 해거름이 되어서야 트럭의 시동을 걸었다. 순옥을 찾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두찬을 만나 스산하게 지는 겨울 해를 보면서 술이나 한 잔 할까 생각했다. 그런데 두찬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순옥과 마찬가지로 흔적도 없이. 아니다. 승합차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다만 문이 잠겨 있고 사람이 보이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크리스마스라고 어디 놀러 갔나?’

그때는 그렇게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다음날, 또 그 다음날도 같은 상태였으므로 비로소 뒤늦게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두찬이 사라진 것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저녁 무렵부터 크리스마스 오후 해거름 동안이었으므로 순옥이 사라진 시간대와 거의 겹쳐졌다. 하지만 사라진 시각을 확정할 수 없기 때문에 ‘같은 날’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우의 머리 속은 ‘같은 시간대’와 ‘같은 날’ 사이에서 오가며 ‘같은’이라는 형용사가 울림을 더해가고 있었다. 그럴수록 ‘같은’은 ‘같이’라는 부사와 뒤섞여 부각되었다. 하지만 왜? 영우의 좌절감은 그 부분에서 깊어져갔다. 하지만 왜?

영우는 장사도 접고 대리운전도 나가지 못한 채 달팽이 뚜껑을 덮은 채 안으로 안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두찬과 순옥이 사라진 지 이레, 영우가 승합차 구석에 틀어박힌 지 나흘째다.

두찬의 말대로 찾는 사람이 많았다. 연말인데 뭐 없나, 헛기침 툭툭 던지며 나타나는 짜바리에서부터 성욕보다 식욕이 왕성할 것 같은 노인네, 서로 낄낄대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장난을 가장해 문을 두드리는 연인 혹은 사내들, 그리고 여드름투성이의 고등학생들까지.

“어? 그 쥐새끼는 어디 갔어. 응?”

이렇게 말하는 건 짜바리.

“전에 사간 건 못 쓰겠더라고. 좋은 것 좀 내놔봐.”

무르고 보는 노인네들.

“아이씨, 다음엔 꽁짜로 준다고 했었단 말이야. 어이, 젊은 싸장님. 한 번 주까? 물물교환. 전에 그 자식은 잘 해줬단 말이야. 맨날 한 번 더, 한 번만 더, 해대서 탈이었지.”

이건 다방 혹은 술집 아가씨들.

하지만 영우는 물건을 파는 데 별 관심이 없었다. 그냥 달라면 그냥 주고 물러 달라면 물러 주었다. 깎아 달라면 깎아 주고 몸으로 때우려고 하면 다음에 달라고 했다. 주면 받고 안 주면 안 받았다. 물건 값을 잘 몰라 오히려 손님한테, 전에 두찬이 얼마라고 하더냐, 물어서 받기도 했다.

영우는 줄곧 ‘하지만 왜?’를 생각했다. 순옥의 짐이 빠진 방은 휑뎅그렁했기 때문에 돌아갈 마음이 나지 않았다. 있어 보니 두찬의 승합차는 뚜껑이 덮인 달팽이 속처럼 제법 아늑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며칠이 지나 가만히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더듬이를 뻗어 보았지만 전신을 파고드는 냉기와 이물감이 엄습해왔다. 영우는 이내 더듬이를 거두어들이고 잔뜩 움츠린 채 다시 뚜껑을 덮어 버렸다. 그리고 용맹정진하는 불자처럼 ‘하지만 왜?’를 외고 또 외웠다.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다는 믿음은 없었지만 그렇게 하자 어쩐지 마음이 가라앉고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왜, 하지만 왜, 하지만 왜…….’

하아무 작가